《시대복장》 Iconclash: Contemporary Outfits

일민미술관

2025.05.30 - 07.20

패션은 동시대를 가장 예민하게 기록하는 매체다. 무언가를 입고 벗을 때마다 옷장은 시대를 저장하는 아카이브로 변모하고, 유행은 옷 위에서 유동하는 무늬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패션은 어느 한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암묵적인 사회적 분위기 위에 성립한다. 그렇기에 ‘패셔너블한 것’에 대한 합의는 언제나 모호하다. 동시대 시각문화의 흐름에서 미술이 맞닥뜨린 변화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패션은 과거보다 다양한 하위문화를 둘러싼 복합적인 장이 되었다. 그 현장인 도시는 패션이라는 복합체를 생산·소비하고 재구성하는 참여자들의 거점이다. 이곳 서울은 이러한 혼란을 유연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미적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편차가 큰 기온, 생산과 소비가 밀착된 인프라, 옛것과 새것이 일상적으로 뒤섞인 풍경, 취향이 특정 계층에 고착되지 않는 정보의 빠른 순환이 서울의 패션을 형성한다. 서울에서 고급 부띠끄가 즐비한 대로와 생동감 넘치는 골목의 경계는 지하철 몇 정거장의 간격만큼 좁고 희미하다.

시대복장 Iconclash: Contemporary Outfits》(이하 시대복장)은 동시대 서울의 패션을 저마다의 개성으로 드러내는 세 스튜디오―지용킴, 포스트아카이브팩션(파프), HYEIN SEO―를 소개한다. 지용킴(f.2021)은 태양, 바람, 비와 같은 자연적 조건에 원단을 노출하는 선블리치(Sun-bleach) 기법을 통해 모든 에디션에 고유의 시간이 깃든 옷을 만든다. 지용킴의 옷은 공장식 대량생산으로 재현할 수 없는 환경과 시간의 유기적 관계를 근면하게 번역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포스트아카이브팩션(이하 파프, f.2018)은 도시의 물질 문화를 움직이는 여러 요인을 현재에 수집·재구성한다. 파프의 디자인은 비가시적인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소프트웨어와 닮았고 이들의 옷은 변형을 수용하는 아카이브로 변주된다. 이로써 파프는 완결된 상품으로서 옷에 관한 전형적인 발상을 파괴하면서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 이름 붙일 수 없는 미래의 유행을 가시화한다. HYEIN SEO(이하 혜인서, f.2015)는 소설과 영화의 한 장면, 도시에서 수집한 익명의 서사 파편에서 광범위한 영감을 얻는다. 혜인서의 옷은 추상적이거나 불명확한 이미지 또는 이야기를 착용자의 몸 위에 옮겨 오는 매체이며 이때 패션은 일상과 밀접한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패션과 미술은 도취적으로 스스로를 전시한다. 미술이 보편적 형식이나 완성의 추구에서 벗어나 생산자 개인의 매체 창안과 표현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듯, 패션은 개인의 몸과 문화, 환경이 교차하는 접점을 즉물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의 장르가 되었다. 동시대 미술관의 전시실이 쇼룸처럼 패션 스튜디오의 쇼룸이 전시실처럼 서로를 닮는 현상은 패션과 미술이 비슷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패션 전시’는 단순히 옷을 아이코닉한 사물로 진열하는 일, 미술의 참조점을 이탈한 도상으로 패션을 제시하는 일과 구분될 수 있다. 시대복장의 목표는 두 영역이 공유하는 문화 지형을 매개로 패션만으로는 검증할 수 없고 미술만으로는 표상할 수 없는 동시대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전시 부제 ‘아이콘클래시(Iconclash)’는 이 과정의 긴장과 충돌을 포함한다. 전시는 미술관 전시의 통념과 미묘한 마찰을 일으키는 동시에 패션이 미술관에서 자신을 방어하며 형성하는 감각의 전선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일민미술관이 수행해온 동시대 시각문화 연구를 잇고 불확실한 시대의 윤곽을 보다 선명하게 기록할 것이다.

기간
2025.5.30.()7.20.()

장소
일민미술관 1, 2, 3전시실 및 프로젝트 룸

주최
일민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