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tain Li Hyunwoo

눈 컨템포러리

2025.06.12 - 07.11

Curtain
Li Hyunwoo

12 JUNE - 11 JULY 2025

 




어떤 장면은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다. 매일 오가는 길, 한낮의 그림자가 스쳐간 계단, 외벽에 무심하게 부착된 CCTV, 도심 가장자리의 방음벽, 금속성의 레미콘 트럭. 이현우는 그처럼 일상의 구석에 머물러 있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단순히 대상을 향하지 않는다. 그 위를 스치듯 흐르는 빛과 그림자, 그 변화의 결을 좇는다.


이현우의 회화는 사물의 전체를 담고 있지 않는다. 화면 속에 놓인 형상은 대체로 명확하지 않고, 선명한 서사를 갖지도 않는다. 어떤 대상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단순화되거나, 잘려 나가 있다. 대신 그 자리를 감싸는 것은 반복적으로 쌓아 올린 붓질, 연결된 색면, 화면의 질감 위에 남겨진 리듬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알아맞히게 하기 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기운과 빛의 온도에 먼저 반응하게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회화는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차가운 구조의 추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물 곁에 천천히 머문 시선에서 비롯된, 조용하고 따뜻한 감각의 형식이다. 작가는 도시의 표면에서 하나의 장면을 떼어내고, 그 표면 위를 스치는 시간과 감정을 회화로 다시 짜낸다. 캔버스 위의 마른 붓질은 마치 천을 엮는 일처럼, 한 올 한 올 겹쳐가며 이뤄진다. 화면은 단단한 구조물이 아니라 감각의 결을 지닌 섬세한 직물처럼 완성되는 것이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물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임으로써 존재한다.” (“Things are not what we see them to be, but they exist in and through their appearing.”) 이현우의 회화는 바로 그 ‘보임’의 방식에 주목한다고 할 수 있는데, 대상이 명확하게 드러나기보다, 빛에 스쳐 흐르고 그림자에 덮이며, 때로는 그 경계에서만 감지된다. 이는 사물의 실체보다, 환영이 드러나는 순간의 감각을 붙잡는 것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레미콘도, 계단도 아닌, 그 위로 지나가는 오후의 한 시간대, 혹은 금속 표면에 맺힌 잠깐의 공기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커튼》은 그가 작업에 접근하는 방식 전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커튼은 사물을 가리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빛을 여과하고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감각적인 필터이다. 작가 역시 대상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그 위에 드리운 조용한 흐름—빛, 그림자, 감정의 여운—을 화면에 옮겼다. 그 간접적인 방식은 보는 이를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서게 만들고, 어딘가를 바라보다 멈춰선 순간처럼, 무언가를 기억할 듯 말 듯한 느낌처럼, 그의 화면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감각의 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현우의 회화는 이렇게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대신 아주 사소한 순간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그 곁에 오래 머물게 한다. 그 정직하고 조심스러운 시선은 화면을 통해 천천히 드러난다. 그 결과 우리는 이현우의 회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감각을 ‘겪게’ 되는 것이다. 전시 《커튼》은 그렇게 펼쳐졌다. 빛이 머물다 간 자리, 그림자가 닿은 흔적,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결. 이 조용한 풍경들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잠시 멈추고, 그 안의 리듬을 따라가 보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