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산으로 봐줄래요
유채린(큐레이터)
붓 끝이 종이를 긋는 행위는 형태를 옮겨놓는 일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화면 위에는 단순한 모양이나 색이 남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일어난 찰나와 손끝을 지나간 리듬이 남는다. 정진아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완성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이루어진다. 이는 어쩌면 오래 바라본 끝에야 알 수 있는 형상의 감각일지 모른다.
이번 개인전 《일련의 형태들》에서 선보이는 세 갈래 작업인 <풍경 요소>, <장면 단상>, <일련의 형태들>은 모두 그 감각을 다른 방식으로 붙잡으려 한다. 색채와 무채색, 평면과 입체, 통제와 우연이 뒤섞이는 그의 작업은 ‘풍경’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으로 이끈다. 그중 <풍경 요소>는 2023년부터 이어져 온 연작으로, 변화하는 자연의 성질을 화면에 담아내려는 시도였다. 캔버스에 얹어진 곡선과 색채, 형태의 리듬은 구체적인 자연물을 지시하지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산의 깊이, 구름의 가벼움, 열매의 생명력을 감지하게 한다. 그렇게 정진아의 화면은 인식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 “얼마나 산처럼 그려야 산으로 볼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보이는 것과 보인다고 믿는 것 사이의 틈을 벌려내며, 풍경이라는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짜 맞추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저 자연물의 형태를 옮기는 것과는 차별화되는 이 작업은 자연이라는 대상이 성립되는 시각적 조건과 인식의 구조를 더듬는 과정이다.
인식 구조에 대한 이러한 발상은, 동양화와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Interactive Telecommunications Program)을 함께 전공한 작가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회화와 더불어, 풍경을 인식하게 하는 요소들을 디지털 화면 속에 구축하는 실험을 꾸준히 이어왔다. 동양화의 시점은 서양 회화의 일점투시와 달리, 시간성을 품은 채 이동하며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작가는 이 시간성을 디지털 환경으로 옮겨오며, 또 다른 인식 방식을 모색해왔다. 2진법 세계에서 물체를 인식하는 방식은 여러 방향에서 포착한 장면을 조합해 형태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컴퓨터의 시각’은 단일한 시점에 묶이지 않고 모든 시각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반대로 시각 자체가 부재한 상태를 만든다. 관점은 무한히 복제되고, 그 결과 전통적인 화폭에 담을 수 없었던 것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채집된다. 이렇게 모아진 장면과 관찰의 감각은 작가 특유의 색채를 입고, 캔버스 위에서 새로운 화면으로 구축된다.
전시의 또 다른 축은 색채를 과감히 걷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색채 운용이 그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 중 하나임을 생각하면, 이번 선택은 단순한 표현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작업 세계를 흔들어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장면 단상>(2025)에서 그는 아름다운 채색 물감을 내려두고, 종이 위에 흑연으로만 선과 면을 겸허히 쌓아 올린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는 강렬한 운동성과 여백이 남고, 이를 마주하는 순간 강한 기운을 선명히 느끼게 된다. 작가에게 풍경은 시각적 화려함을 제공하는 장식물이 아니라, 시선과 기억, 문화적 경험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집합체고, 흑연이 만든 회색 단면들은 이러한 풍경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시도이다. 채색 작업이 넓힌 다채로운 시점과 감각의 가능성을, 흑연 작업은 다시 하나씩 걷어내어 구조와 골격만을 남기고, 풍경을 다시 처음부터 세워 올려보도록 한다. 관람객은 색이 사라진 화면에 잔존하는 선과 면의 운동성을 따라가며 풍경이란 무엇으로 성립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전시의 마지막 축은 매체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형상과 시점을 탐구해온 작가에게 조각으로의 확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2023년의 <나무 조각>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일련의 형태들>(2025)은 세라믹을 통해 구현된 새로운 풍경의 단면이다. 공간 한쪽에서 벌어진 조형 실험은 화면 속에 있던 인식의 단서들을 끄집어내 3차원의 공간으로 가지고 나왔다. 세라믹은 작가가 오랜 시간 다듬어온 평면 회화의 감각과는 또 다른 법칙을 따른다. 가마에 들어간 재료는 수축하고,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기며, 형태는 은근히 비틀려버린다. 이는 우리가 미처 알아채고 통제하지 못하는 아주 미묘한 물리적 법칙들에 따르는 것으로 자연의 속성이며 풍경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틈과 변형이 주는 즐거운 우연을 받아들이며 생동감 넘치는 실험을 한 끝에 평면 속 풍경을 꺼내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일련의 형태들》은 색채의 확장과 절제, 평면에서 입체로의 전환이라는 세 갈래 실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산으로 봐줄래요”라는 질문을 변주한다. 화면 위에 놓인 것은 선과 색채, 혹은 흑연의 흔적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기억하는 어떤 장면들이 스며 있다. 산을 닮은 것은 곡선일 수도, 무채색의 여백일 수도, 혹은 손끝이 지나간 아주 작은 스침일 수도 있다. 정진아의 작업은 그 가능성을 단정하지 않고, 관객 각자가 자신의 눈으로 완성해내기를 기다린다. 오래 바라본 끝에야 드러나는 형상의 감각처럼, 그의 작업은 풍경을 본다는 행위 안에서 천천히 완성된다.